한국안경신문 정현모 편집인
한국안경신문 정현모 편집인
얼마 전 고위공직자와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안경을 자랑스럽게 내밀며 가격이 얼마쯤 할 것 같아 보이냐고 물었다.

대략 70~80만 원쯤으로 보인다고 대답하자 그는 기쁨과 감탄이 뒤섞인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자신이 맞춘 가격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그에게 가장 합당하고 적절한 가격에 구입했노라고 말해주었다. 만약 그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똑같은 제품을 구해줄 수 있다는 말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단순히 안경 가격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안경계 전체에 대한 신뢰를 무너트리고 안경사들 모두 폭리만 취하는 장사꾼이란 인식을 심어줬을 게 뻔하다.

자신의 안경 값을 물어볼 때부터 그는 안경계에 대한 어느 정도의 불신을 깔고 있었다. 제값보다 더 부담하고 안경을 맞춘 것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안경인들은 이와 같은 질문을 수시로 받을 가능성이 많다. 이럴 때 어떻게 대답하느냐는 본인의 선택이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안경계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마치 수많은 안경원에서 덤핑 세일 현수막을 내걸 듯, 자신의 지인들에게 더욱 싼 안경제품 소개에 나서거나,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주기 바쁜 안경인도 적지 않아 보인다.

더욱이 안경원을 버젓이 개설한 안경사들이 온라인 쇼핑몰을 열어 P2P 거래로 포장한 가격파괴를 일삼고 있다. 안경계에서는 심지어 안경사 단체인 대한안경사협회 임원까지 이러한 온라인 덤핑 마케팅에 나선다는 풍문이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안경계의 주인공 스스로 자신의 입지를 깎아내리는 일을 벌이는 셈이다. 이러한 일을 반복하는 까닭은 언제부턴가 안경업계에 뿌리박힌 ‘싼 티 마케팅’이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안경원에서 “더 싸게”를 외치고 수시로 대대적인 할인 이벤트를 벌인다. 또 웬만한 고객들에게는 좀 더 높은 가격대의 품질 좋은 제품보다 쉽게 구입을 결정할 수 있는 저가 안경을 추천한다.

진지한 상담과 추천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보다 ‘빨리빨리’ 한 고객을 보내고 새로운 고객을 맞는 양적 기준에 초점을 맞춘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안경제품은 선진국에 비해 매우 저평가되고 있다.

남대문시장 안경원 밀집상가에 몰려드는 일본인 관광객들은 한 사람이 몇 개의 안경을 맞추기도 한다. 몇 개를 맞춰도 일본에서 하나 맞추는 것보다 싸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미교포나 유로국가의 교포들도 한국 방문길에 직접 가족들 안경까지 맞추거나 고국의 친지들에게 자기 시력의 교정 값만 알려주고 대신 맞춰 보내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값이 싼데다 품질은 현지 제품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얼핏 소비자 입장에서 이보다 좋을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양질의 제품을 보다 싼 가격에 구입하는 것은 소비자 공통의 바람이고 정부도 이를 장려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 안경사들과 안경업계 관계자들도 행복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소비자들은 좋아하지만 안경사나 업계 관계자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기만 한다. 더욱이 일부 제값 받는 안경사들은 폭리를 취하는 장사꾼으로 매도되기도 한다.

업계 또한 낮은 납품단가에 수익구조가 취약해지고 경영악화의 위기에 몰리기도 한다. 안경원과 업체간 출혈경쟁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싼 값에 안경을 맞췄다고 좋아하는 소비자들도 마냥 기뻐할 수만 없다.

값싼 제품은 딱 그만큼의 품질만 갖췄을 뿐이다. 당장 안경을 맞출 때 친구보다, 이웃보다 더 싼 가격을 지불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안경렌즈 하나도 좋은 제품일수록 양질의 재질과 정교한 가입도 등으로 선명한 시야를 보장한다. 또 내구성도 뛰어나 보다 오래 착용할 수 있다.

이같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전문가인 안경사들이다. 안경사는 국민들의 시력건강을 책임지는 보건의료인이다.

의사들이 빠르고 정확한 환자 치료를 위해 보다 좋은 약품을 처방하듯, 안경사는 언제나 최고 품질의 안경렌즈와 테, 콘택트렌즈를 처방해야 할 의무가 있다.

가장 적나라한 사례로 병•의원에서 진료비를 깎는 환자는 단 한 명도 없지만 안경제품 가격흥정을 벌이는 고객은 비일비재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많은 안경원에서 당장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가격 정찰제를 외면하고 저가 마케팅에 의존하다보니 안경은 으레 깎으면 깎을수록 가격이 내려가는 재래시장 물건과 같이 돼버렸다.

이제 와서 이렇게 된 일의 원인과 책임을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원인과 책임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급선무는 안경계 전체가 더 이상 ‘싼 티 마케팅’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공감대를 확산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또 지도적 위치에 있는 중견 안경사들의 솔선수범이 절실하다. 이렇게 안경계의 지평을 다듬은 뒤에야 대국민 홍보나 사회적 발언에도 힘이 실릴 것이다. ‘저가 마케팅’은 더 이상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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