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형오 아이쓰리옵틱 대표
채형오 아이쓰리옵틱 대표
시력을 교정하는 안경은 의료기기로 분류되지만 안경테는 패션 상품이 되기도 한다.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디자인이 중요하다. 여기다 안경사와 같은 전문가들이 요구하는 광학적 조건까지 갖춰야 한다. 안경테는 많게는 하루에도 수백 가지 새로운 모델이 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그만큼 독창적인 디자인을 구현하기 어려운 아이템이기도 하다. 이와 비슷한 예로 대중음악계를 들 수 있다. 대중 음악계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50년대부터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된 pop 음악 시장에서 더 이상 새로운 멜로디는 찾아낼 수 없다고 한다.

약 50여년에 걸쳐 듣기 좋고 아름다운 멜로디는 모두 뽑아 썼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00년대 이후 발표된 신곡들은 대부분 언젠가 들어본 듯한 느낌을 준다. 이미 발표된 곡의 멜로디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대중들은 느낌으로 아는 것이다.

미국 길거리의 흑인 음악으로부터 시작된 힙합과 랩 음악이 강세를 보이는 것도 더 이상의 좋은 멜로디를 찾기 어려워서일 수도 있다. 안경테 업계도 이러한 대중음악계의 사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안경 구조는 어차피 수백 년 전 만들어진 기본 틀에서 크게 바뀔 수 없다.

테를 이루는 재질도 첨단 소재 등을 적극 도입하고 있으나 아직 메탈과 흔히 뿔테라고 부르는 대중적 재질 비중이 큰 편이다. 그럼에도 독창적인 디자인의 안경테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유명 업체들은 자사만의 독특한 디자인 프랫폼을 두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제품을 선보인다.

이같은 디자인 작업에는 상당한 인적·물적 투자가 필수적이다. 몇몇 대표 업체를 제외한, 상대적으로 열악한 수준의 국내 업체들로서는 쉽게 진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까닭에 안경테 업계는 디자인 카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국내 업계 사정은 일찌감치 디자인 기반을 닦아온 유럽 메이저 업체들에 비해 크게 낙후된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많은 업체들이 ‘알게 모르게’ 타사 제품의 디자인을 모방하고 있다. 이른바 명품 브랜드라는 일부 해외업체는 수주회나 전시회에서조차 관람객을 엄격히 통제하고 사진 촬영은 절대 허용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해외 광학전에서 한국인들이 경계 대상 1위로 꼽힌다는 웃지 못 할 상황도 벌어진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러한 모방과 카피에 의지해 안경테 산업을 진행할 수는 없다. 이미 세계는 지구 반대편과 실시간 정보를 주고받는 글로벌경제 체제를 굳히고 있다.

물류도 발달해 서울에서 부산으로 물품을 보내는 것과 이태리 밀라노까지 보내는 시간도 거의 차이가 없어졌다. 산업의 중심과 변방이라는 구분선이 그만큼 모호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독자적인 디자인 역량을 갖추지 못한 안경테 산업계는 더 이상 경쟁력을 가질 수 없게 된다.

국내 모든 테 관련업체들이 갑자기 디자인 기반을 마련하고 하루 이틀만에 새롭고 창조적인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계속 미룰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미 일부 국내 테 제조업체는 일찌감치 디자인 역량을 강화, 세계 유명 브랜드와 견줘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 제품은 해외 유명 브랜드와 하우스브랜드 모델과 비교해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디자인이 우수하면 나머지 생산과 유통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프랑스의 유명 하우스브랜드는 본사에서 디자인만 진행하고 생산라인은 일본에 두고 있다.

디자인 역량이 충분하기 때문에 지구 반대편을 오가면서 안경테 산업의 주인공이 되는 셈이다. 우리 업계의 여건은 오히려 유럽보다 좋을 수 있다. 우수한 디자인 자원이 있고 안경테 제조기반도 튼튼한 편이다. 또 세밀한 공정이 필요한 테 제조에 필요한 장인의 기술도 세계적 수준이다.

안경테 제조기술의 집산지가 앞으로 동북아시아, 즉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이 될 것이란 전망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문제는 국내 테 제조업체의 적극적인 디자인 개발의지와 이를 뒷받침하는 재정적 지원이다.

우리 안경산업은 정부로부터 생각보다 많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국내 테 제조업체의 르네상스를 다시 이루기 위해서는 업계 관계자들의 마인드 못지않게 다각적인 정부 지원도 필요하다. 이러한 지원은 각각의 업체만의 힘으로 얻기 어렵다. 업계를 대표하는 기관·단체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다.

이런 안팎의 노력이 하나로 뭉칠 때 우리 안경테 산업은 열악한 디자인 환경을 극복하고 세계 시장에 독창적인 제품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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