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알광학 대표 심성보
한알광학 대표 심성보
플라스틱 장난감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던 시절, 아이들은 풀잎이나 나무조각, 종이 등으로 직접 장난감을 만들어 갖고 놀았다. 이 가운데 한여름 즐겨 만들던 장난감은 수수깡 안경이었다.

얇은 껍질을 벗겨 둥근 림을 만들고 줄기로는 다리를 만들었다.

어설픈 안경을 완성하면 저마다 얼굴에 걸치고 할아버지의 헛기침 흉내를 내며 놀았다. 지금은 이런 수수깡 안경을 만들지도, 구경하기도 힘들어졌다.

직접 장난감을 만들만한 나이의 꼬마들도 저마다 세련된 컬러 안경테를 끼고 하루종일 학교에서 학원으로 종종걸음하기 바쁘다.

또 안경을 꼈다고 해서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쓴 할아버지 흉내를 낼 일도 없다. 이미 가족 대부분이 안경이나 콘택트렌즈를 끼고 있기 때문에 안경은 얼굴의 한 부분이나 다름없게 됐다.

그만큼 안경은 과거에는 어린 동심 속에서, 지금은 생활 속에서 가까운 생활용품이다. 안경이 없는 생활공간은 이제 찾을 수 없게 됐다. 굳이 찾으려든다면 우주 비행사들이 모여있는 미국 NASA 승무원 훈련센터나 우리나라 공군 전투비행단 조종사 대기실 정도가 꼽힐 것이다. 군대에서도 안경은 지휘관부터 말단 소총수까지 필수품이 된지 오래다. 거친 야전 훈련을 하다 안경을 깨트린 사병은 마지막 날 사격 측정에서 ‘죽을 쑤기도’ 한다.

그다음 자대로 복귀하면 멋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검은 뿔테의 보급품 안경테에 렌즈를 맞춰 써야 한다. 이제 안경은 남녀노소, 직업이나 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소중한 물건이 됐다.

멋을 따지는 사람들에게 안경은 또 효과적인 패션소품이 되기도 한다. 색다른 디자인의 안경으로 개성을 뽐내고 비즈니스맨은 업무에 따라 어울리는 안경을 바꿔 쓰기도 한다.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안경은 가까이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이율배반적인 물건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일부러 찾아 쓰는 마음의 거울이 되기도 한다.

실연하거나 스스로 변심한 뒤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것처럼 안경테를 바꾸는 여성도 있다. 이런 여성이 많을수록 안경업계 종사자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노안이 심해져 돋보기가 있어야만 가까운 사물이나 글씨를 알라보는 노인들에게도 안경은 꼭 필요하다.

과거 근시용 안경과 돋보기 안경을 함께 갖고 다니던 노인들은 누진다초점렌즈가 알려지면서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돋보기 안경을 쓰고 신문 마지막 면까지 꼼꼼히 읽는 노신사의 모습은 어쩐지 정겨워 보인다. 이런 저런 안경을 모두 모아 한 곳에 쌓아두면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서울의 안경만 모아도 여의도 63빌딩보다 높을 것이다.

만약 전세계 안경을 다 끌어모은다면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만큼 구름을 뚫고 성층권 위로 솟아오를 지 모른다.

안경인이라면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보는 것도 괜찮다. 서양동화 제크와 콩나무처럼 하늘을 뚫고 솟아오르는 안경나무를 상상해보자.

그 안경나무에는 어린 시절 작은 손으로 만들어보던 수수깡안경부터 멋대가리 없는 육군사병의 보급품 뿔테안경, 검은 승용차 뒷자리에 파묻혀 얼굴 보기 힘든 고관대작의 금테안경이 열려있다.

또 애인이 바뀔 때마다 안경도 새로 맞추는 바람둥이 미인의 화려한 안경도 있고, 다락같이 올라가는 등록금에 일찌감치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어 두 눈 퀭한 가난한 대학생의 2만 원짜리 안경, 간밤 이승을 떠나 텅 비운 노인 잠자리 머리맡의 손때 묻은 돋보기 안경테까지 주렁주렁 달려있을 것이다.

그런 안경 하나하나마다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노여움과 용서 등 모든 감정이 담겨있을 것이다. 안경나무는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절반 이상의 삶을 모아 안경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하나하나의 열매에는 안경을 사서 쓰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안경테를 직접 만들고 렌즈를 깎는 장인들의 손때도 묻어있다. 마침내 커다란 구름처럼 하늘을 덮은 안경나무 가지는 대지를 달구는 불볕 태양빛을 가리고 시원한 구름을 만든다.

그런 커다란 안경나무를 심고 가꾸는 사람이 바로 안경인들이다. 만약 안경인들이 없다면 어린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수수깡 안경을 만들어 써보았겠는가. 멀리서 전해진 자식의 편지를 읽기 위해 몇 번이고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는 시골의 늙은 부모 마음은 누가 헤아려 어루만졌겠는가.

우리 안경인들이 하는 일은,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이처럼 무엇보다 소중한 작업이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수단, 방편으로만 생각하지 말자.

우리 안경인 손으로 뿌리는 작은 씨앗 하나하나가 안경나무의 싹을 틔우고 마침내 하늘 높이 키를 키워 온 세상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게 된다.

저작권자 © 한국안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