⑪ 안경원 업무트렌드 바꿔야 고가전략 통한다

우리나라 안경사들은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복합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전문적인 검안을 통해 피검사자의 시력 정보를 얻은 뒤 이에 맞는 안경렌즈, 또는 콘택트렌즈를 처방하고 PD는 물론 테와 얼굴 곡면을 측정한 뒤 안경 조제·가공을 진행한다.

마지막으로 완성된 안경을 고객이 가장 잘 쓸 수 있도록 하는 피팅까지 마친 뒤에야 한 고객에 대한 업무를 마무리할 수 있다. 검안사와 안경판매사가 분리된 미국이나 호주와 비교할 때 우리나라 안경사 두 가지 주요업무를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시력전문가이자 기능인이 돼야 한다.

여기다 안경원 경영을 위해서는 마케팅 전반에 걸친 이해가 필수적이고 각 고객을 접촉할 때는 전문 판매사 입장에 서야 한다. 1인 다역. 즉 ‘멀티 플레이어’(multi player)로서 전방위적인 전술을 소화하는 ‘올 코트 프레싱’(all court pressing)을 펼쳐야 한다.

multi player의 all court pressing

지금까지 대다수 안경원들은 전문직종이라는 의미보다 시력교정자에게 필수품인 최대한 많은 안경제품을 팔아 이익을 남겨야 한다는 비즈니스 측면에 주력해 왔다. 보다 많은 고객을 유치하고 가급적 빠른 시간에 절차를 마친 뒤 제품을 판매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경제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관행은 일반적인 안경원 업무트렌드로 자리 잡게 됐고 최근 여러 문제를 노출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일부 안경원 쇼윈도나 배너광고물에 커다랗게 내건 할인광고나 초저가 판매 등은 전문성보다 사업성을 앞세운 안경원들이 저지르고 있는 대표적인 폐단이다. 그러나 간혹 이와 정반대의 길을 걷는 안경원도 있다.

당장의 사업성보다 ‘보다 나은 시력제공’을 앞세우며 철저한 검안 및 처방에 주력하는 안경원들이다. 이러한 안경원은 ‘안경판매점’이 아닌 ‘준보건의료기관’의 면모를 앞세우려 한다. 단시간에 최대한 많은 안경제품을 판매하려는 안경원과, 보다 꼼꼼한 검안을 진행하면서 고객에게 양질의 시력을 찾아주는 안경원은 완전히 다른 양극화의 길을 걷는다.

두 안경원의 업무트렌드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셈이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어느 안경원이 우위에 설 지는 굳이 따져볼 필요조차 없다. 두 가지 업무트렌드 가운데 판매에만 주력하는 측은 고부가가치를 가진 기능성렌즈 안경을 추천하기 어렵다.

고객 입장에서도 짧은 시간에 걸쳐 형식적인 시력검사를 한 뒤 최소 수십만원짜리 제품을 선택하지 않게 된다. 반면 타 안경원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 꼼꼼한 검안을 진행하고 여러 세부적 상담까지 한다면 웬만한 고객은 다소 부담되는 제품까지 선뜻 받아들인다. 각 안경원의 업무트렌드, 또는 안경사의 역할에 따라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두 가지 업무트렌드의 결과물

21세기 안경계의 환경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최근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국민 생활수준 향상으로 보다 다양하고 기능이 뛰어난 안경제품 수요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10여 년 전 5~6만원이었던 안경렌즈 1조 가격이 1만원 대에 유통되고 있다.

시장상황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셈이다. 많은 안경원들이 과거 70~80년대와 같은 업무트렌드를 고수하기 때문이다. 일부 안경원은 꼼꼼하고 체계적인 검안시스템과 상담으로 많은 시간을 빼앗길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안경계의 일부 관계자들은 물리학에서 말하는 ‘총량 불변의 법칙’을 예로 들며 안경인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우리나라의 시력교정인구는 고정적인 안경이나 콘택트렌즈 소비자로 남아있다. 이들 시력교정인구는 안경계의 업무트렌드가 어떻게 바뀌든 안경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

안경계의 합의에 따라 모든 안경원이 ‘준보건의료기관’과 같은 업무를 진행할 경우 시력교정인구가 줄어들거나 외국에서 안경을 맞출 일은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더욱 체계적이고 세심한 검안 및 서비스로 안경계에 대한 만족도가 크게 높아지게 된다.

더욱이 이런 과정을 통해 각 안경원에서 고객의 시력건강을 위한 양질의 제품 추천이 가능하고 이는 결국 고부가가치 제품의 시장진입을 활성화하게 된다. 각 안경원의 수익성 증대는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부가이익이다.

21세기 걸맞는 안경계 위상 쌓기

안경사, 또는 안경원 뿐만 아니라 안경업계 전체에 끼치는 순기능도 적지 않다. 제조·유통업체의 경영환경 개선으로 전체 산업의 활력을 가져올 수 있다. 안경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높아지게 된다. 최근 안경사들이 털어놓는 ‘안경판매 점원’식의 자조감 대신 명실상부한 국가 면허증을 가진 시력전문가로서 입지를 굳히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사실 20여년 전 안경사제도가 시행되면서 안경인 스스로 얻어내야 할 과제였다. 그러나 각 대학의 정규과정을 통해 안경사를 배출해오면서도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결국 최근과 같은 저평가를 자초하게 됐다.

한편, 안경계 일각에서는 젊은 안경사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업무트렌드 확보와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시간을 쪼개 연구모임 등에 참여 양안시와 검안학 등을 공부하면서 안경원 현장에 접목한다.

이같은 움직임은 그러나 아직 전체 안경계에서 소수에 불과, 업계 저평가와 국민들의 불신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경계의 전체적인 각성과 합의를 위한 열린 창구, 그리고 상생을 위한 연대가 아쉬운 대목이다.

국민 시력건강을 위한다는 대의를 앞세워 업무트렌드를 바꾸는 일이야 말로 안경계 전체를 살리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고부가가치 제품 추천을 통한 안경원의 수익성 향상은 물론, 안경인 전체의 위상을 끌어올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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