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티안경체인 채경영 대표
이노티안경체인 채경영 대표

지난 가을부터 경제계를 중심으로 ‘상생(相生)’이란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정부가 대중소기업 상생을 위한 정책에 주력한다고 밝히면서 벌어진 일이다.

대기업이 하청업체 등 중소기업을 지원한다니 듣던 중 반가운 일이다. 그렇다고 큰 기대를 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대형마트에서 반값 피자를 구워 팔거나 1/3 가격의 치킨을 팔다가 그만둔 일에 비추어본다면 상생이란 말을 실감하기 어렵다.

상생은 본래 노자(老子)가 한 말이라고 한다. 노자의 도덕경 상편 제2장에 ‘유무상생(有無相生)’이란 구절이 나온다. 있음과 없음이 서로 함께 산다는 화합의 가치를 일깨우는 말이다.

노자는 세상에 반대되는 개념은 없다고 보았다.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와는 전혀 다른 관점이다. 우리는 상생을 말하면서도 흔히 이런 이분법적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쉽게 말해 대기업은 가진 것이 많이 ‘있는’ 측이고 중소기업은 ‘없는’ 편이 된다. 이런 구도를 미리 만들어놓고 상생을 끼워 넣으면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양보나 희생이 불가피해진다.

이러한 일방적인 관계는 그리 오래 갈 수 없다. 상생은 말 그대로 있음과 없음이 함께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주고받는 관계에 치중하는 게 아니라 서로 조화를 이루자는데 방점을 찍어야 한다.

아군과 적군을 나눠 싸워야 하는 시대에서 벗어나 모두 공존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 미래학자들도 앞으로는 상생이 인류 생존의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2500여 년 전 노자가 말한 구절이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21세기 이후의 인류를 밝히는 희망이 된 것이다.

우리 안경업계도 상생의 가치를 새롭게 가다듬어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체인안경원 사업은 가맹 안경원 모두에게 잘 사는 길을 제시한다는 큰 맥락을 유지해야 한다.

체인본부가 더 많은 파이를 가지려 할 때 사업의 본래 취지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나눔과 상생의 철학은 한 체인사업자의 틀을 벗어나 안경업계 전체로 확산해야 한다.

우리나라 안경산업은 전적으로 전국 8000여 안경원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인구대비 안경원이 너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일부 안경사님들은 체인안경원의 독식으로 영세한 독립 안경원이 더 힘들어진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전체 안경원의 30% 정도인 체인 가맹안경원이 전체 매출의 70%를 가져간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을 보면 충분히 그럴만하다. 이런 맥락에서 비체인 안경원 안경사님들이 가지는 상대적 박탈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 번쯤 거꾸로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체인안경원은 함께 잘 살아보자는 상생을 기본 이념으로 한다. 특히 각 지방의 안경원들이 각각 주인 자격으로 구성한 지역협의회가 주요 결정을 내린다.

올바른 민주주의 제도의 뿌리가 지방정부인 것처럼 체인안경원의 근간을 이루는 것도 지역협의회다. 이런 협의회는 끊임없이 같은 지역 안경원끼리의 도움을 주고받으며 상생의 길을 열어간다. 이러다보니 다른 안경원들에 비해 더 강한 경쟁력을 갖게 된다.

일부 비체인 안경원이 어려움을 겪는 까닭 가운데 하나로 이러한 상생 마인드의 부족을 꼽는다면 너무 지나친 말이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번쯤은 꼭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이기도 하다.

인근의 다른 안경원들과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고, 가급적 자주 머리를 맞대는 자리를 마련하면 어떻겠는가.

최근 대한안경사협회의 일부 지역 안경사회가 자체적으로 제품교육 등을 진행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무척 바람직한 일이다. 이런 교육 등이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마련될 때 미래 안경원이 가야할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다.

또 이러한 자리에서 같은 권역의 안경원들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고 공동이벤트까지 벌인다면 해당 지역의 시민들도 혜택을 얻게 된다.

가령, 지방의 한 도시에서 안경원들이 똘똘 뭉쳐 일정기간 무료 시력검안 행사를 진행하거나 시력개선 캠페인 등을 벌인다면 그 지역의 시민들은 다른 곳에 사는 친인척에게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안경원과 안경사 이미지도 좋아질 수밖에 없다.

안경원끼리의 상생을 위한 노력이 지역 시민들까지 행복하게 하는 확장성을 갖게 된다. 즉 안경업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잘 사는 진정한 상생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상생은 공존이나 공생이라는 말보다 더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바로 ‘적극적’이라는 말이다. 상생은 관계되는 주체 모두가 실천적인 노력을 해야만 완성된다.

안경업계의 상생도 마찬가지다. 어떤 일에 대한 지적이나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또 원론적인 수준의 발전전략 제시도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떤 발전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직접 함께 머리를 맞대고, 내려진 결론을 성취하기 위해 구체적인 실천에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 안경업계도 진정한 상생의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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