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엔 단조롭지만, 내포된 기술력 매우 화려

고대로부터 안경은 함부로 다룰 수 없는 물건이었다. 동이나 니켈 같은 메탈 소재부터 금, 은, 대모(Hawksbill) 바다거북의 등갑, 동물의 뿔 등으로 만들어졌던 고가의 물품으로 대를 이어 물려주는 소중한 자산이었기 때문이다.
1800년대 유럽의 한 자서전격 문헌에 따르면, 세도 있는 백작 집안의 남자 아이가 금으로 된 아버지의 안경을 망가뜨려서 백작 아버지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들을 눈 나오게 두들겼다는 에피소드가 기록 되어있다. 그 정도로 소중하게 다루는 물품이었다.
1900년대 미국 시장의 성장으로 안경 산업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개인공방에서 OPTICIAN들이 수작업으로 제작하던 공예품 형태의 안경이란 오브제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대중적인 상품으로 변모했다. 접근성이 용이하게 된 안경의 대중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었지만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듯이, 보석세공사에 가깝던 옵티션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던 공방형 안경은 이제 보기 힘들어졌다.
수많은 안경 브랜드들이 핸드 메이드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반수작업 형태의 제작공정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것은 시대적 흐름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장인정신의 발로를 잃지 않은 브랜드들이 아직 남아 있기는 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철학을 계승하는 덴마크 브랜드 코펜하겐 아이즈(CopenhagenEyes)다.
덴마크의 코펜하겐 중심가에서 작은 안경원을 운영하던 Jan Haumand에 의해 설립된 코펜하겐 아이즈의 안경들은 겉으로 보기에 단순하고 단조롭다. 그러나 프레임 자체에 내포된 기술력은 매우 화려하다. 프레임 안쪽의 렌즈 림을 지탱하는 후크 형태의 지지대는 보는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이 독특한 걸쇠 시스템만으로 세계 최대의 안경 수주회 프랑스 SILMO 쇼에서 베스트 기술 혁신상을 수상한 바 있다. 소재는 최상급의 베타 티타늄을 사용하며 기존 브랜드들이 사용하는 손쉬운 열처리 채색 방식이 아닌 좀 더 까다로운 산화막 이온 도금 방식을 채택해 색감의 깊이를 구현해낸다. 이러한 도색 방식은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좀 더 복잡한 공정을 통해 퀄리티를 유지하는 방침을 고수한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높은 성형 기술력과 도색방식을 채택하면서도 이를 프레임 전면에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상 화려한 기술과 장식을 좀 더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여타 브랜드들과 달리 매우 차분하고 조용한 안경 디자인을 선보인다. 시대적 트렌드에 편승하지 않고 오롯이 그들만의 디자인을 고수하는 코펜하겐 아이즈의 안경은 그래서 안정적이고 품격이 있다.
모든 디자인은 절제되어 있으며 그 형태는 오로지 실용성과 편안함을 추구하기 위한 일환일 뿐이다. 그리고 모든 공정은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대량 생산이 불가능한 시스템 이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렇게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안경이란 오브제에 묵묵히 담아내며 고집스러운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자신들이 지켜야 할 것을 지켜내는 신념과 더불어 만들어내는 물건에 좀 더 많은 의미를 담을 방법을 생각하는 브랜드 코펜하겐 아이즈는 어떤 의미에선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상징한다 할 수 있겠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상품의 범람 속에 살고 있다. 과잉의 홍수 속에 창조가 익사 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과대 포장과 거짓 스토리텔링이 난무하는 가운데 제대로 된 ‘물건’을 채택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제대로 된 검증과 검열을 하기에 정보의 양은 너무나 방대하고 또한 우리의 삶은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코펜하겐 아이즈는 하우스 안경 브랜드다.
오로지 안경만을 생산하는 안경에 특화되고 집중된 공방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빠르게 좀 더 값싸게 많은 물량을 공급해야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여타 브랜드의 구조와는 매우 동떨어진 행보를 보이는 브랜드이다. 디지털 시대에 화석같이 살아남은 아날로그의 산물이라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구매자가 느끼는 가치는 더 극대화 된다.
안경 한 장이 삶을 바꿔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하나의 안경으로 착용자가 살아온 삶이 투영될 수는 있다. 살아오면서 누적된 무언가가 많은 사람일수록 복장이나 액세서리에 꼼꼼히 신경을 쓰는 건 그런 이유일 것이다. 보통 그가 선택한 기호품에 관철하는 가치관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들이 ‘진짜’를 원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코펜하겐 아이즈는 그저 안경을 만드는 덴마크의 작은 공방이지만 그들의 안경에서는 윤오영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에서 피력하는 사라져가는 전통과 장인정신에 대한 그리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건 그런 안경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가는 헤리티지를 담고 있는 장인의 물건. 그 가치를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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