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안경제품 A/S 등 기술료도 당당히

‘서비스산업 선진화’ ‘일반인 법인안경원 개설 허용’ ‘한-EU FTA 협정 체결’ ‘안경사 국가시험 전형방식 변경’ ‘콘택트렌즈 관련 고발방송’. 지난해 우리나라 안경계가 맞닥뜨린 여러 문제 가운데 일부다. 2008년 말 시작된 금융위기 여파로 불황의 늪에 빠진 안경계는 이중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일부에서는 안경사들이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을 뒤로 한 채 하루하루 매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영세 자영업자로 전락했다는 자조가 팽배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안경사의 전문성을 되살리고 강화함으로써 업계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적극적인 방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소비자 needs에 부응하면서 시력전문가로서의 전문성을 끌어올려야만 우리나라 안경산업 전체가 도약할 수 있다는 자각에서 나온다. 본지는 안경사들과 동반 발전을 지향하는 관련기업 및 학계와 함께 안경계 살리기 캠페인을 진행한다.

회사원 김달곤 씨(36·가명)는 지난달 술자리에서 안경을 깔고 앉는 바람에 림과 다리 연결부분이 비틀어졌다. 맞춘 지 2년이 다 됐지만 얼굴에 잘 어울려 애착이 많이 가는 안경이었다.

김 씨는 아까운 생각에 2년 전 안경을 맞춘 안경원을 찾아 수리를 부탁했다. 이틀 후 약간 흔적은 남았지만 쓸만하게 고쳐진 안경을 찾으면서 수리비를 내려 했으나 담당 안경사는 받지 않아도 된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김 씨는 이번 일을 겪으며 안경 A/S가 수백만원대의 가전제품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례는 얼핏 아주 바람직한 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안경계의 뿌리 깊은 구조적 모순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 가운데 하나다. 가장 큰 문제는 안경제품의 A/S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년 전 맞춘 안경도 A/S는 공짜?

A/S는 말 그대로 판매 후 수리나 부품교환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무상 서비스를 말한다. 여기에는 반드시 A/S 기한을 명시한 약관이 따라야 한다. 약관도 없이 고객이 원한다는 이유로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A/S가 아니라 해당 안경원, 혹은 안경사의 임의 서비스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서비스는 전적으로 안경사의 의지에 따라 진행할 수도 있고 정중하게 거절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절은 대부분 엉뚱하게도 고객이 지불하고자 하는 사례금을 마다하는 쪽으로 모아진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은 다 해주면서 받아야 할 대가는 거절하는 비정상적인 거래가 안경 A/S라는 명분 아래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시민들은 안경제품에 문제가 있을 경우 으레 무상 A/S를 요청하고 있다. 이미 관례화한 무상 수리 요청에 대다수 안경원에서는 안경테 제조업체로 제품을 보내 처리해주고 있다. 제조·유통업체들은 이러한 수리요청 제품들 때문에 업무부담 증가 등의 문제를 감수하는 실정이다.

대구 지역 안경테 유통사 매장에는 매주 우체국으로부터 들어온 대형 마대 자루가 쌓인다. 이 업체 관계자는 “이게 다 전국 거래처 안경원에서 올라온 A/S 의뢰 안경테들이다”며 “매주 대량의 반품, A/S 안경테가 본사로 오기 때문에 업무에 지장이 많다”고 말했다.

A/S를 의뢰하는 안경원들도 수시로 들어오는 안경테 수리 요청에 골머리를 앓는 것은 마찬가지다. 수년 전 안경을 맞춘 고객들도 자신의 과실로 파손된 제품을 들고 와 막무가내 수리를 맡기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안경테 제조·유통업체도 무상 수리에 몸살

서울 관악구의 안경원에 근무하는 최 모 안경사는 “테 수리를 맡기는 고객의 파일을 검색하면 언제, 어떤 안경을 맞췄는지 나오지만 테의 종류까지 데이터화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간혹 다른 곳에서 구입한 테를 들고 와 수리를 요청하는 고객도 있지만 서비스 차원에서 처리해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이에 따라 안경 수리는 무조건 공짜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안경을 맞출 때 검안과 조제·가공비를 별도로 내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잘못으로 파손된 안경도 비용 지불 없이 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 여건이 나빠지면서 테 수리 요청도 증가, 가뜩이나 불황에 어려움을 겪는 안경원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문제는 사후처리도 어렵고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는 A/S도 무기한 ‘공짜’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소비자들의 ‘안경테 A/S는 공짜’라는 인식 때문에 관련 비용 처리 문제로 소비자, 안경원, 제조유통사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안경원에서는 A/S 경우 안경테를 구매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경우에 소비자에게 대부분 무상으로 해준다. 그러나 장기간 시일이 지나고, 제품의 문제가 아닌 소비자 과실이 분명한데 무상 처리를 주문할 때는 난감한 입장이다.

제조유통사의 입장 역시 안경테 A/S 문제 때문에 괴롭다고 한다. 대구의 한 유통사 대표는 “출고한지 몇 년이 지난 제품의 A/S요청이 올 때 난감하다”며 “대부분의 제조유통사들은 거래처 안경원과의 관계유지 문제로 무상으로 안경테 사후처리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A/S 기한·처리비용 공식화 서둘러야

과거 안경계에서는 이같은 문제를 인식, 먼저 안경테 등의 A/S 기한을 명시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아직 뚜렷한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먼저 안경계 전체의 입장을 모아 각 품목별 A/S 기한 기준표를 마련, 모든 안경원 및 제조·유통업체가 공유해야 한다.

또 현재 비공식적으로 각 안경원에서 적용하는 품목별, 파손부위별 수리비용 요청 기준도 통일되지 않아 소비자 인식개선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현재 안경원에서는 A/S가 되는 제품과 불가능한 제품을 나누고 있다.

안경테 수리의 경우 뿔테는 절단, 흠집, 스프링, 큐빅 수리 등으로 나뉘며 비용은 각각 2만원에서 1천원까지 다양하게 책정된다. 메탈 테의 경우 절단, 도금, 코팅, 스프링, 템플 교체 등 각각 상태에 따라 비용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파손 정도별, 부위별 수리비도 통일한 뒤 A/S 기한에 따라 유·무상 처리를 진행해야 한다. 명문화 된 안경테 A/S 기한과 비용 기준은 안경원과 소비자 분쟁을 막아주는 한편, A/S 비용 부담을 피하기 위한 안경 재구매 효과를 유발시킬 수 있다.

안경원은 소비자에게 안경테 수리에 대한 유상 요구를 당당하게 하고, ‘공짜’ 개념의 소비자들 마인드를 전환시킬 때 안경계 발전 효과를 얻게 된다. 막연한 소비자 배려 차원의 무상 수리 서비스는 안경원과 제조·유통업체 모두 멍들게 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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