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렌즈 가격이 턱없이 싸졌다는 말이 계속 나오고 있다. 과거 최하 5만원대에 이르던 안경렌즈가 지금은 한 조에 1만원대까지 내려앉았다. 이러한 저가경쟁의 원인으로 가장 먼저 중국산 렌즈를 거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안경원에서든 Made in China라고 적힌 렌즈를 찾긴 어렵다. 결국 중국산 저가 렌즈가 밀려들어온다는 핑계로 국내 업체들끼리 가격경쟁을 벌이기 때문이란 결론을 내리게 된다.

소비자나 정부 입장에서는 싸구려 렌즈가 많다는게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다. 정부는 가뜩이나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이런 마당에 안경류의 가격이 10여년 전과 거의 같거나 낮아진 사실은 반기면 반겼지 싫어할 일이 아니다.

반대로 저평가된 렌즈 가격을 바로잡는다는 이유로 안경업계가 뜻을 모은다면 곧바로 당국의 ‘담합 조사’가 시작될지 모른다.

공식적인 채널에서의 업계 노력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최근 두 가지 뉴스가 눈에 띈다. 하나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이다. 폭등하는 휘발유 값을 두고 그는 주유소는 정상적인 가격을 책정하는데 정유사들의 공급가격이 투명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조만간 정유사들에 대한 정부의 대대적인 조치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윤 장관의 말은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의 “기름 값이 묘하다”는 발언이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하자 이를 다시 상기시키는 차원에서 나왔다는 관측이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뉴스는 대지진의 재앙을 겪고 있는 일본인들의 질서의식이다.

하나의 뉴스는 연간 수천억 단위의 이익을 올리는 대기업의 담합 의혹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얻는 공동 이익에 대한 뉴스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최근 우리 안경렌즈업계의 과도한 가격경쟁은 작은 이익을 위해 공동의 큰 이익을 포기하는 행태로 분석할 수 있다.

유명한 게임 이론 가운데 ‘내시 균형(Nash equilibrium)’이 있다. 이는 상대방이 현재 전략을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 나 자신도 현재 전략을 바꾸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죄수의 딜레마’는 용의자 A와 B를 격리한 뒤 A가 죄를 자백하고 B는 자백하지 않을 경우 A는 즉시 석방, B는 10년형에 처한다는 가정을 제시하는 것이다. A와 B 모두 자백하면 둘 다 6년형을 선고한다고 알린다. 이럴 경우 A와 B는 상대편이 자백하리라 보고 모두 자백해 6년형을 받게 된다. 지금 우리 안경렌즈업계는 이처럼 타 업체가 가격경쟁을 벌일 것이란 가정 아래 저마다 자사 제품 가격을 내리고 있다.

결국 10만원의 가치가 있는 제품까지 5만원, 3만원으로 가격을 내리게 되고 이런 경쟁은 끝없이 계속된다.

이익 공유를 위한 의도적 담합이 아니라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비의도적 담합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러한 비의도적 담합이 반대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다름 아닌 지진피해를 입은 일본인들의 경우와 같은 모습이 나올 수 있다.

나만 먼저 작은 이익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지 않고 한 발씩 물러서면 세계가 경탄할만한 질서가 세워진다. 그리고 각 구성원 모두에게 골고루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고 이익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

혹시 모른다. 담합 의혹을 받는 정유업계도 업체간의 구체적인 가격정책 합의를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공급가격을 책정해왔을 가능성도 있다.

안경렌즈 업계, 또 안경업계 전체의 여러 업체들로서는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제 이런 부러움에 머물지 않고 가격정상화를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시작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한국안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