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여정 속에서도 저에게 봉사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예전과는 다르게 봉사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면서 기업이나 개인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수있다. 이는 봉사를 통해 보람을 얻는다는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미지 상승효과를 기대하는 모습도 적잖게 볼수있다. 봉사가 사회적 마케팅이라는 용어로 일반화되기까지 이르렀던 가운데 무려 53년간 오로지 남을 돕는 길을 묵묵히 걸어온 사람이 있다. 바로 일공공일안경콘택트 속초점의 대표이자 한국늘사랑회 이사장으로 있는 김상기 원장. 이제는 안경사보다 봉사명장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그와 한국안경신문은 이번 1000호 특별기획호를 맞이해 ‘봉사명장의 인생 여정’이라는 주제로 특별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원장님에 대해 알아보며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기사를 많이 접했습니다. 어려웠던 환경 속 안경사라는 직업을 택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어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 학업을 포기했습니다. 친구들 공부할 때 공장에서 일하며 부러운 마음에 몰래 눈물을 훔치곤 했어요. 그렇게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내고 군 복무를 마친 후에는 친척이 운영하던 안경원에 취직했는데 이를 계기로 안경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Q 당시 우리나라를 생각해보면 안경사라는 직업이 생소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안경사의 길은 어땠나요?

당시 우리나라에는 안경에 관한 지식이 아직 체계적으로 잡히지 않아 금은방에서 안경을 팔 정도로 주먹구구식 제작이 이뤄지곤 했습니다. 타인의 눈을 위한 일인데 어찌 그럴 수 있는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사명감이 들더라고요. 현재 국내 홍채학의 기틀을 마련한 이남한 교수와 박신호라는 친구, 이렇게 셋이 모여 안경 관련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독학에 한계가 있을 때는 당시 한 분 계시던 안경 관련 전공 교수님께 직접 배우러 수시로 서울에 올라가곤 했어요. 당시만 해도 서울까지 가는 데 5시간이나 걸렸는데 말이죠.

1999년 설립한 재단법인 늘사랑장학문화재단에서 지난해 9월 진행한 늘사랑장학문화재단 43주년 기념식 및 장학금 수여식
1999년 설립한 재단법인 늘사랑장학문화재단에서 지난해 9월 진행한 늘사랑장학문화재단 43주년 기념식 및 장학금 수여식

Q 안경원 대표이자 현재는 한국늘사랑회 이사장으로도 활동하고 계시는데 한국늘사랑회은 어떤 단체인가요.

한국늘사랑회는 제가 안경원을 창업할 무렵인 1972년에 창설한 단체입니다. 감사하게도 저의 활동에 공감하시며 많은 봉사자분이 모이기 시작했는데 도움이 필요한 곳이 늘다 보니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었어요. ‘우리들의 가슴속엔 늘 사랑이 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사랑의 손, 도움의 손, 치유의 손으로 청소년들과 갖은 질병으로 고생하는 이웃들, 무의탁 노인 등 주변 소외계층에 사랑을 베풀고 있습니다.

Q 그동안 봉사를 해오면서 기억에 남았던 사연이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학업을 포기하고 직장에 다니던 당시 에델바이스클럽이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봉사를 해왔습니다. 한국늘사랑회를 창설해 본격적으로 봉사를 나선 지도 벌써 53년이나 흘렀네요. 그동안 여러 일도 많았고 하나하나 소중한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아무래도 삶과 죽음의 갈림에 놓인 아이를 살렸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언젠가 한국늘사랑회의 도움을 받았던 아이가 건강한 모습으로 찾아와 결혼식 주례를 부탁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라고요.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 또다시 성장해가려는 모습을 보는 경험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Q 최근에도 기억에 남았던 사연이 있었나요?

폭력으로 무려 5번이나 학교를 옮겼던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학교만 제대로 나와도 졸업을 시켜주겠다는 말에도 졸업이 어려웠을 만큼 모두가 그 학생을 포기하려고 했어요. 그럴수록 저는 그 학생의 어머니께 아이를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곤 했습니다. 그 아이가 지난달 15일에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해 다음 달이면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진심 어린 도움의 손길 한번 내밀어주길 바랐던 저의 어려웠던 시절이 떠오른 감동적인 사연이었어요.

2019년 강원도 산불 당시 직접 김치와 장조림 등 반찬을 만들고 배달했던 자원봉사릴레이
2019년 강원도 산불 당시 직접 김치와 장조림 등 반찬을 만들고 배달했던 자원봉사릴레이

Q ‘늘사랑졸업잔치와 같이 꾸준하게 진행하는 선행 이벤트가 있습니다. 혹시 새롭게 기획하고 있거나 여건이 된다면 기획하고 싶은 이벤트가 있나요?

해외 봉사를 하다 보니 그 나라에서 초청받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이를 계기로 늘사랑회에서 아이들과 함께 해외를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당시 아이들이 자기도 해외에 갈 수 있구나 하고 자긍심을 느끼던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금보다 여건이 훨씬 충분하게 마련된다면 해외 문화도 경험해 볼 수 있는 이벤트를 기획해보고 싶습니다.

Q 평소 한국늘사랑회의 이사장으로서 그리고 본업인 안경사로서 삶은 균형을 어떻게 이루고 있나요?

기본적으로 술과 담배를 절대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돕기 전에 나부터 건강해야 움직일 수 있거든요. 그리고 꼭 필요한 모임이 아니라면 가능한 한 지양하려고도 하는데 아무래도 모임이 있으면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시간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루를 세분해 계획하는 습관을 지키고 있습니다. 저의 봉사에 관심을 가지고 그 선한 영향력을 본받고자 외부 강의의 초청도 늘었는데 이렇게 정리하지 않으면 지킬 수가 없겠더라고요. 지금도 아침에 눈을 뜨면 병원에 계신 분들과 지인들에게 인사 메시지를 보내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Q 기술이 발전할수록 편리한 생활을 이루고 있지만 때로 메마른 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원장님이 그리고 싶은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우리나라에 종교단체가 많은데 저는 이 종교단체에서 한 가정씩만 도와도 우리나라에 가난은 사라질 것으로 믿습니다. 작은 사랑으로 시작해 아름다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그런 모습을 그리는 거죠. 요즘 우리 안경사분들이 무료 시력교정이나 안경테 맞춤과 같은 봉사를 진행한 소식이 기사로 보일 때면 참으로 기쁩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안경 관련뿐만 아니라 일명 재능기부라고 하죠. 본인이 가진 능력을 활용해 넓은 범위에서 봉사활동이 이뤄진다면 사회의 아름다운 모습은 물론 안경업계에 대한 이미지도 자연스럽게 좋아질 거로 생각해요. 그런 이상적인 모습을 기대해봅니다.

지난달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인물을 초대해 로또 복권 추첨을 진행하는 “생방송 행복드림 로또 6/45‘에 ’황금손‘으로 출연했던 모습
지난달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인물을 초대해 로또 복권 추첨을 진행하는 “생방송 행복드림 로또 6/45‘에 ’황금손‘으로 출연했던 모습

Q 훗날 많은 사람에게 어떤 이미지로 기억에 남고 싶은가요?

이미 장기를 포함한 신체는 필요로 하는 분들이 도움받을 수 있도록 기증을 약속했어요. 뼈는 나고 자란 동해에 뿌려달라고 말해두었습니다(웃음). ‘인간 김상기, 남을 위해 살다가 여기에서 죽다’, 이미 생각해둔 묘비명이 있을 정도로 한평생 봉사해온 만큼 남을 위한 일이라면 가장 먼저 발 벗고 아낌없이 돕고자 했던 존재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Q 그동안 한국안경신문과도 끈끈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1000호 발행을 맞이한 한국안경신문에 한 말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한 분야에서 우물을 파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번 지령 1000호 발행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씀드립니다. 지금까지 안경사와 여러 업체 사이에서 시너지가 발할 수 있던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애쓰는 한국안경신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와 응원 전하며 앞으로도 안경업계의 소중한 동반자로 함께 나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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