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변경 강행, 의료보험 추진 등 대의원 표심 급변으로 판세 갈라
115대 110의 5표차 드라마틱한 승부로 수장 날개 달았다

각본 없는 드라마가 따로 없었다.

제22대 대한안경사협회의 신임 협회장 선거가 치러진 대의원총회. 이 거대한 세트장의 주인공은 허봉현 신임회장도, 결과를 깨끗이 승복한 신영일 후보도 아니었다. 

바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변을 연출해낸 225명의 대의원.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서로를 자극하고, 또 서로를 변화시키며 이날의 피날레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본지는 뜨거웠던 현장의 열기를 지면으로나마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또한, 5표 차 극적인 승리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도 짚어본다. 

△선거 당일 오후 1시50분.  행사 개시 10분 전까지 이변이 일어날 거라고는 예상할 수 없었다. 당일 판세를 가늠할 수 있는 진영별 군집도 역시 기호 1번 신영일 후보 쪽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사실 선거 자체가 무산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을 만큼, 세간의 전망은 신영일 후보의 압승을 예상했다. 실제 허 후보는 마감 당일이 돼서야 선거공탁금 납부와 후보등록을 마쳤을 만큼, 분위기는 신 후보에게 유리했다.

그리고 정기총회 직전까지만 해도 2차례의 후보자 토론에서 맹공을 펼친 허 후보와 달리 시종일관 안정적인 모습을 연출했던 신 후보의 압승이 예상됐다. 선거 2~3일 전 대의원들에게 전송된 장문의 문자메시지도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2시30분  개회사를 낭독하던 김종석 협회장이 뒤돌아 눈물을 닦기 시작한다. 지난 6년간 고생해준 임원진들에게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직전, 감사선거 개입 및 선출직 임원해임 문제를 제기한 모 교수의 문자메시지를 거론하며 억울함을 피력했다.

지난 6년간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시도일 뿐이라며 대의원들의 현명한 판단을 주문한 것. 동정표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퍼포먼스였다. 그리고 이어진 회의. 장일광 수석감사의 감사보고가 진행됐다.

특유의 저음과 차분한 어조로 김종석 집행부의 잘못을 하나하나 지적해 나가자, 행사장 내부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대의원들에게 배포된 메시지에서 김종석 협회장이 임원들을 해임하면서까지 당선을 저지하려던 장본인이 바로 장 감사였기 때문이다.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까지 흘렸던 김 협회장과 달리, 장 감사는 시종일관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런 침착함이 오히려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하지만 대세는 이미 정해진 후였을지 모르는 일이다. 

△3시30분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협회장 투표만을 남겨두고 있는 시점에서 마지막 안건에 대한 논의가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어서다. 회의장 여기저기서 고함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특히 지방에서 올라온 대의원들의 경우,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다.

자칫 문제를 제기한 측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상황. 안건은 임원해임을 이사회 의결만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정관 변경이다. 김종석 집행부가 후임 집행부를 위해 낡은 정관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는 것으로 이해됐다.

오히려 허봉현 후보 측에서 선거를 위해 이 문제를 이슈화하려는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 상황. 하지만 안건이 상정되고 30분가량 반대가 이어지자 서서히 기류가 변하기 시작했다.

반대 의견이 적지 않은 만큼, 다음 총회로 판단을 유보하면 됐을 문제다.

그러나 김종석 협회장은 강행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급기야 해당 안건에 찬성했던 임원들마저 반대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총회에서 선출된 임원까지 하위기구인 이사회에서 해임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결국,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달아오른 후에야 정관 변경은 철회됐다. 

△4시30분  가장 극적인 장면이 연출된 순간이다. 투표 진행을 위해 임시의장이 선출되고 휴회가 선언되자, 20여 개가 넘는 테이블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일제히 테이블 중앙으로 모여드는 모습이, 흡사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배우들의 그것이었다.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서다. 선거 직전에 의사소통이 많아진다는 건, 지지 후보를 바꿀 마음이 생겼다는 소리. 다시 말해 판세가 뒤집히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때부터 본지도 비상상황에 돌입했다. 정상적인 신문발행을 위해서는 목요일 오후 6시까지 모든 데이터가 인쇄소에 전달돼야만 한다. 기호 1번, 기호 2번 어느 쪽이 당선되더라도 기사화할 수 있도록 일부 문구만 비워놓은 채 작업을 마무리했다. 

△5시20분  개표 전 승패는 이미 판가름 났다. 기자가 허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보고한 시점이다.

판단 근거는 박수 소리. 판세가 요동치고 있는 상황에서 허봉현 후보는 마지막 정견발표를 통해 ‘안경 의료보험’ 추진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농어촌 지역이 많은 지회일수록 강하게 반응했다. 각 후보의 정견발표 후 들리는 박수 소리만으로도 이번 선거의 승자를 예측하기 충분했다.

△5시57분  ‘115대110 허봉현 승’이라는 문자를 데스크에 발송한 시간이다.

단 5표 차 승리. 신영일 후보는 단 3표의 이탈만 막았어도 승리할 수 있었던 결과다. 승자는 겸손했으며, 패자는 의연했다.

승패를 떠나 이제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멋진 승부를 펼친 두 후보 모두 박수받을 만하다. 특히, 이번 선거는 신영일 후보와 허봉현 후보의 경쟁보다는 김종석 체제에 대한 평가가 더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6년 만에 정권을 교체한 허봉현 회장은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복지부로 달려가야 했다. 그만큼 심각한 현안들이 협회에는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민심은 천심이라고들 한다. 이 말엔 백성들의 뜻이 모일 때는 하늘의 뜻이 작용한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이 어려운 시기 대의원들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승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회원들을 대표하는 대의원들이 허봉현 회장을 5만 안경사의 수장으로 선택한 것에 어쩌면 쓰임이 예정되어 있을 수도 있다. 5만 안경사들의 절박한 심정이 하늘을 움직였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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