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박이 정부, 제대로 된 로드맵 구축 절실
광학기술 핵심 렌즈산업 육성으로 렌즈강국 이루어내야

 

2010년 12월.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501쪽 분량의 ‘국가 광과학기술 로드맵 구축’이라는 정책보고서를 출간했다. 용역을 수행한 주관기관은 사단법인 한국광학회다. 

보고서는 △광통신 △레이저 가공 및 측정 △생명 및 의료광학 △태양광 에너지 △반도체 조명 △디스플레이 △광학기기 △보안 및 방위산업 △광계측 △광소재, 부품 및 장치 △광과학기술 교육 및 연구 등 11개 분야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산업육성을 위해 어떤 기술을 개발하고, 또 어떻게 발전시켜가야 하는지 정책입안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네이버에서 원문 확인이 가능한 이 로드맵은 15년이 지난 현재까지 광학기술 정책 수립 시 중요한 근거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대체할 자료가 마땅치 않아서다. 그런데 이 보고서가 반쪽짜리라는 오명과 함께 대한민국 광산업의 경쟁력을 후퇴시킨 장본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광학기술의 핵심인 렌즈산업이 부실하게 다뤄졌기 때문이다. 광학렌즈의 중요성을 강조하자니 드러내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감추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바로 안경렌즈(콘택트렌즈 포함)가 철저히 배제된 것. 의료광학이 포함된 만큼 의료기기라서 다루지 않았을 리는 만무하다. 

더욱이 세계시장 규모가 몇백억에 불과한 제품군을 망라하면서 10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안경렌즈가 덜 중요해서 빠트린 건 더더욱 아닐 터. 독일과 프랑스, 일본 등 광학 강국의 자료만 살펴보았어도 빠질 수 없는 게 안경렌즈다. 

광학기술 강국은 안경렌즈 기술을 토대로 다양한 첨단 기술을 발전시켜왔다. 그런데 왜? 유독 대한민국에선 철저히 배제됐을까?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은 R&D 주도권을 독차지하겠다는 욕심.

산업용 렌즈는 광학회를 중심으로, 안경렌즈는 안광학회를 중심으로 연구‧발표되던 관행이 반쪽짜리 보고서를 탄생시킨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는 마지막 주제인 ‘광과학기술 교육 및 연구’에서도 드러난다. 전자공학과나 물리학과에서 운영하는 광학 관련 전공은 물론, 고등학교까지 나열하고 있음에도 전국 40여 개 안경광학과는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50여 명의 집필진 중 한국광기술원 소속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점. 그리고 그 궁금증은 마지막 페이지에서 해소됐다.

보고서의 대미를 한국광기술원의 확대개편을 의미하는 ‘광과학기술연구원 설립 로드맵’이 장식하고 있어서다. 

혹여나 중립성이 훼손될까 고심한 흔적. 보고서의 방점이 국가의 미래가 아닌, 조직과 집단의 이익에 찍혀 있던 모양이다. 물론 15년이 지난 시점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추측에 불과하다.

문제는 15년 전의 잘못된 판단으로 안경렌즈와 산업용 렌즈 모두가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이나 CCTV용 렌즈는 중국과 대만 기업에 점차 밀리고 있는 모양새. 산업용 렌즈만으로는 시너지를 발휘하기 어려웠을 터다. 

안경렌즈는 말할 것도 없다. 정부의 기술발전 로드맵에서 배제된 안광학 분야의 R&D 사업과 인력양성 사업이 제대로 순항하기는 힘들었을 테니 말이다. 

무엇보다 산업용 렌즈와 안경렌즈는 소재와 성형, 가공, 코팅 등 기반기술을 상당 부분 공유한다.

박사과정까지 운영하는 안경광학과가 여럿인 상황에서 인력양성도 다를 바 없다.

힘을 모아도 어려울 판에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갈라놓은 로드맵으로 제대로 된 정책 수립은 어려웠을 터. 이는 비단 렌즈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우주 군사용 광증폭기나 반도체 장비, 광가속기 등에 사용되는 초정밀 부품은 렌즈산업의 기반이 탄탄해야 도전할 수 있는 분야다.

전략물자로 지정, 구매 자체가 불가능한 이들 제품의 자립 없이는 첨단산업 전반의 경쟁력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동차도 만들지 못하는 나라가 갑자기 항공기나 우주선을 개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엄폐물 하나 없이 치열한 기술전쟁의 복판에 선 대한민국. 광학기술에 있어서만큼은 한쪽 눈을 감은 채 싸워왔던 셈이다.

이제라도 제대로 된 ‘국가 광학기술 로드맵’이 요구되는 이유다. 외눈박이는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 함께 보아야만 찾을 수 있는 해법도 존재한다. 안경렌즈 강국이 광학기술 강국인 까닭이다. 

 

저작권자 © 한국안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