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학회, 안과협회와 교류하며 안과계와 유대관계 이어가야

▲이정배((사)대한안경사협회 제17대, 제18대 회장‧전국안경사협동조합 고문)
▲이정배((사)대한안경사협회 제17대, 제18대 회장‧전국안경사협동조합 고문)

어제가 없는 오늘은 있을 수 없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지난 522일 허봉현 협회장께서 양산 가톨릭 공원묘지에 잠들어계신 강중화 초대협회장님의 묘소를 참배하는 모습을 접하고 먼저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

어느 집안이나 시조(始祖)가 있고, 조직에는 창립자가 있다. 대한안경인협회를 창립하신 강중화 초대협회장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44년이 지났다. 또 당시에 활동하시던 선배 안경사들도 역사의 뒤안길로 차츰 사라져 가고 있다.

흐르는 망각의 세월 앞에 역사를 일깨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당연하다. 특히 가격파괴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상도의를 지키며 동료애()와 업계의 미래를 먼저 생각했던 초대협회장님의 정신을 받들고 이어받아야 한다.

필자 역시 협회장 재임 시절 부산 광복동에 위치한 안경원 방문과 묘소참배를 매년 하며 자제분을 비롯한 원로안경사들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초대협회장님의 많은 업적 중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얼굴 한 번 대면하지 못한 후배협회장이 초대협회장의 업적을 거론하는 것은 참으로 조심스럽다.

그러나 잊혀 가는 초대협회장님의 업적을 기리며 몇 가지만 적어본다. 초대협회장님께서는 교통이 열악하던 1972년 전국 안경연합회장에 취임하셨고, 19804월 대한안경인협회 제3대 회장으로 활동하시다 순직하셨다.

연로하신 연세에도 안경 사랑의 열정으로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숙소를 정하시고 며칠씩 머무르며 안경인의 결집과 교육사업을 위해 노력하셨다. 한 마디로 없는 길도 만들어가며 안경인의 미래를 위해 매진하셨다.

사조직인 안경연합을 보건사회부로부터 공식 인가를 받아 사단법인 대한안경인협회를 만드셨고, 초대협회장직에 선임되셨다, 1973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안경계를 발간했고, 대한안과학회와 한국실명예방협회 창설에 참여하며 안과계와도 돈독한 유대관계를 맺었음을 알 수 있다.

1972년 단돈 2(안경사 대관 248P)의 예금통장을 인수하여 종로2가에 처음으로 사무국을 설치했으며 1978년 남대문 지역에 안경회관을 매입하여 후배들의 사무공간을 남겨주었다.

국제시력광학연맹 IOOL(International Optometric & Optical League)에 가입하여 국제교류에도 힘쓰셨고 지금도 유효하다. 특히 안경인의 질적 향상을 위해 1977년부터 안경 통신교육을 개설하여 각 의과대학(안과) 주임교수와 전문가들이 13개 과목의 교재를 집필하여 사용하는 등 안경계의 기술향상에 크게 이바지하셨다. 1985년까지 진행된 안경 통신교육은 안경사 국가면허제도를 만드는 초석이 되었음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처럼 협회를 창립하고 안경사 국가면허제도의 초석을 다지시고 협회 회관을 남겨주셨으나 연속성을 이어가지 못한 후배들의 안타까운 몇 가지가 있다.

그중 안경사제도 이후 안과학회나 안과협회와 연속성을 가지지 못한 점은 안경사 발전을 더디게 하고 있다. 필자가 협회장 재임 중 영향력 있는 안과 의사들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느꼈던 부분이고, 명성 하나만으로도 힘 있는 의사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 역시 공감하는 부분이다.

이외에도 강중화 초대협회장님은 역사에 길이 남을 많은 업적을 남기셨고, 1980년 봄 하늘나라의 안경사 면허를 취득하고 영원한 길을 떠나셨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후배 안경인을 위해 세상 끝까지 헌신하신 강중화 초대협회장님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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