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록 (주)스토리헨지 대표이사 

지난 2년간 수차례 미국을 방문하여 전 세계 최대 안경시장에 대한 리서치를 진행하였고 이를 토대로 대한민국 안경테 브랜드의 미국 진출전략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국 안경시장은 2022년 대략 100조로 추산하며 연평균 5.5%가량 성장 중이고 이 중 20% 정도가 프레임 시장이다. 

안경원 수는 우리보다 5배 많은 5만 개로 그중 3만5천 개가 독립안경원이며 나머지는 대기업 직영이나 프렌차이즈이다.

안경테 공급구조를 살펴보면 월마트나 타겟, 코스트코가 운영하는 기업형 체인은 이미 자체브랜드 또는 룩소티카 같은 공룡기업과 연계하여 안경테 공급망을 완성하였다. 

독립안경원은 기업형 세일즈랩 이나 소규모 개인(소위 나까마) 등 세일즈 조직으로부터 프레임을 공급받는다.

안경원 구매담당자들과의 인터뷰 결과 최근 감지되는 가장 큰 변화는 전보다 가성비 좋은 중간 가격대 프레임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명품 라이센스브랜드를 보유한 룩소티카와 사필로 등 거대기업이 자체 온라인판매를 늘리고 대형 안경체인과의 거래를 우선시하면서 이들 브랜드와 독립안경원과의 오랜 관계에 균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의 변화도 감지되는데 인플레이션으로 명품 라이센스브랜드에 대한 구매를 망설이게 되고 저가 중국산 제품의 품질과 천편일률적인 스타일에 지치게 되면서 가성비 있는 소매가 $200~$300 대 초반 중가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이 같은 시장환경 변화는 가성비와 스타일로 무장한 대한민국 안경테 브랜드가 미국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같은 전망을 전제로 대한민국 안경테 브랜드가 미국 시장에 진출해야 할 때 유념해야 할 사항을 다섯 가지로 요약하였다. 

1. 스테디셀러 기획

미국 소비자는 매우 보수적이다. 트렌드에 민감하기보다는 자신의 취향을 평생 고집하는 경우도 많다.

반면 트렌드에 민감한 우리나라 소비자는 1년만 지나도 새로운 스타일을 원하는 경우가 많고 안경브랜드는 매해 또는 시즌별로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인다.

그러다 보니 특정 브랜드하면 떠오르는 뚜렷한 정체성을 가진 스테디셀러가 별로 설 자리가 없다.

출시 후 2년만 지나도 재고를 찾을 수 없어 재주문에 응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다 보니 미국 내 세일즈맨들이 고객의 요구에 응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하여 안경브랜드는 트렌드와 상관없이 꾸준히 밀고자 하는 제품을 기획하는 것이 좋다.

제품 출시 후 고객의 반응을 살펴보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일정 정도 재고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좋다. 

2. 영업파트너 선택

미국내 3만 5천개 독립안경원에 접근하는 방식은 대략 두 가지로 나뉜다. 기업형 영업조직인 세일즈랩과 계약하거나 회사의 오너가 직접 뛰는 소규모 세일즈회사와 함께 영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대규모 세일즈랩은 비용이 많이 들지만, 속도감 있게 미국 시장에 브랜드가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소규모 세일즈회사는 적정한 마진을 브랜드와 공유하며 상생하지만, 미국처럼 큰 나라에서 의미있는 입점률을 달성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미국 내 장기적인 영업기반을 마련하는 데 있어 반드시 고려해야 기준이 진정성이다. 미국은 관계를 중시하고 유통체계를 존중하는 문화여서 한번 형성된 신뢰관계가 장기간 지속되는 특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 오너가 진정성으로 무장하고 현장에서 직접 뛰는 세일즈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기반 확충에 유리하다.

노련한 오너 영업맨은 안경원 방문시 본인이 오너임을 먼저 밝혀 주의를 환기시키고 상담을 진행한다. 영업의 최종 책임자로서 상생의 이미지를 주는 순간 안경원은 영업사원을 대등한 파트너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기업형 세일즈랩의 영업사원은 이런 장기적 관계 형성이 상대적으로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오너가 직접 뛰는 소규모 영업조직과 미국 진출 전략을 펼치는 것이 우리나라 브랜드에게 더 적절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3. 온라인 판매가격 책정

미국 안경판매는 우리나라 의사와 약사 구조와 같이 진단과 처방은 안과의사가 진행하고 안경사가 그 처방을 토대로 렌즈제작 등을 담당한다. 이 사이에 미국의 독특한 의료 보험체계가 끼어들게 되어 안경원 오너와 소비자의 이해충돌이 발생한다.

요약하면 보험사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유통단계별 원가구조와 상관없이 소매가가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안경원이 적정한 마진을 보장받는 구조가 된다. 

문제는 해외 온라인판매를 진행 중인 우리나라 안경브랜드들이다. 온라인 판매가격이 미국 내 안경원 판매가격보다 현저하게 낮을 경우, 안경원 입장에서 이런 브랜드를 취급할 이유가 사라진다.

이 같은 미국의 상황을 이해하고 온라인 판매가격을 상향 조정하든지 아니면 과감히 해외 온라인판매를 중지하는 것이 미국 안경시장 진출에 유리하다. 

4. 명확한 브랜드 메시지 

최근 미국 내 광학전을 방문하면서 관찰하면 안경테 브랜드의 부스 참여가 줄어들고 있고 이 자리를 원격진료, 보험처리 및 의료데이터 솔루션업체들이 채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독립안경원이 안경테 브랜드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채널이 줄어들고 있다. 

라이센스브랜드를 보유한 거대기업이 자체 유통 안경체인에 집중하고 독립안경원을 소홀히 대하는 것도 이 같은 정보 부족을 심화시킨다.

온라인사이트에서 브랜드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대부분의 안경원은 온라인보다는 영업사원으로부터 직접 정보를 듣길 원한다. 미국은 전통적 대면 영업방식이 유선이나 온라인보다 그 가치를 더 인정받고 있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미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우리나라 브랜드는 영업사원이 현장에서 안경원에게 전달할 수 있는 명확한 브랜드 메시지를 만들어야 한다.

디자인과 품질 등 만듦새에 담겨 있는 제품 컨셉과 함께 판매현장에서 전달할 수 있는 쉽고 직관적인 브랜드 메시지를 확정하여 영업사원에게 숙지시키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5. 아메리칸드림

25년 초 2주에 걸쳐 각각 두 명의 오너 영업맨과 뉴욕과 뉴저지, 코네티컷 3개 주의 주요 도시에 위치한 안경원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 둘은 합쳐서 미 전역에 1,400여 개의 어카운트를 보유하고 있는데 일 년에 지구 세 바퀴 거리를 여행하며 우리나라 브랜드 안경을 미국에 소개하고 있다. 이 영업맨들과 함께 하며 느낀 점은 한국브랜드 제품에 대한 수요가 실재한다는 것이다. 

동행한 영업맨들의 능력이 워낙 출중한 탓도 있겠지만 예약 없이 들어간 안경원의 경우도 샘플을 보여 줄 기회를 얻기만 하면 신규 어카운트 오픈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한 곳에서 큰 변화 없이 그저 그만한 제품으로 40년 이상 영업해 온 보수적인 안경원들이 우리나라 브랜드에 대한 관심을 보일 때 놀라웠다.

미국 시장은 거대하고 아직 우리나라 브랜드를 알지 못하는 안경원이 많다. 가성비와 다양한 디자인으로 무장한 우리나라 안경브랜드의 아메리칸드림이 가능하다. 

정치사회적인 이슈들로 나라 경제가 어렵다. 특히 고질적인 내수부진이 부동산침체와 더불어 장기불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런 불리한 환경하에서도 우리나라는 항상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여 생존에 성공해 왔다. 

앞으로 우리나라 리테일 업계에게 이 활로는 대한민국의 문화적 영향력을 기반으로 한 해외고객 확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

2023년 서울 주요 상권 20곳에서 외국인 카드 사용액이 2조원을 훌쩍 넘었다. 해외고객이 우리나라 브랜드를 얼마나 소비하느냐에 따라 기업 생존이 좌우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고환율이 고착화되고 있어 원가 상승 등 경영환경이 만만치 않지만, 수출기업에는 채산성을 높일 기회의 시간이 될 수 있다.

특히 트럼프 집권 이후 대 중국 무역제재가 현실화한다면 대한민국 안경업계는 중국의 견제를 딛고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 브랜드는 안경을 시력 증진뿐만 아니라 패션으로 인식하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요구를 충족시키며 성장해 왔다.

이러한 실력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안경브랜드들이 로컬브랜드를 넘어 글로벌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다가왔다. 

뉴저지에서 40년 이상 안경원을 운영해 온 한국계 S 안경원 대표의 말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백인고객들 중에는 중국제는 손도 대기 싫으니 보여주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도 한국브랜드라고 하면 써봐요. 이제 우리나라 안경의 시대가 시작될 거예요.”

(이 글에 제시한 미국 안경시장 통계는 Vision Industry Overview, VisionMonday.com을 참조하였습니다.)

저작권자 © 한국안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